[먼 아침의 책들 -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 ] 2020. 02. 16.
1955년에 출판된 [바다의 선물]은 저자가 여름을 보낸 해변에서 마주한 열 가지 조개껍데기를 주제로 7개의 장으로 구성한 책이다. 인생, 특히 여자에게 인생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적은 것으로, 앤의 빈틈없으며 깊이 있는 사색이 각장에 가득한 작지만 아름다운 책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부분을 읽으면 아주 옛날 어렸을 때 나를 감동시킨 그 글의 무게가 다시 한 번 묵직하게 마음을 울린다.
(이하 ‘바다의 선물’ 인용 부분)
오늘날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나라에 있는 사람보다 더 간소한 생활과 복잡한 생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치가 허락되어 있다는 것을 얼마간 얄궂은 기분으로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중 대부분은 간소한 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그 반대인 복잡한 생활을 선택한다. 전쟁이나 수용소나 전후 내핍 생활 같은 것은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간소한 생활을 강요하고 수도승이나 수녀는 스스로 그런 생활을 선택한다. 그러나 나처럼 우연히 며칠간 그런 간소한 생활을 하게 되면 동시에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차분한 기분을 가져다주는지도 발견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종류의 힘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만 솟아나는 것이어서 예술가는 창조를 위해, 문필가는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음악가는 작곡하기 위해, 그리고 성자는 기도하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자신의 본질을 다시 찾아내기 위해 혼자가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때 찾아낸 자신이 여자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인간적 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 여자는 찰스 모건이 말하는 “회전하는 차축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체의 활동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혼의 정적”을 얻어야 한다.
반세기 전에 한 여자 아이가 열중했던 앤 모로 린드버그라는 작가, 사물의 본질을 빈틈없이 파악하고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쓰지 않는다는 그녀의 신념은 이 인용을 통해 독자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앤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여자가 감정의 측면에만 기대지 않고 여자다운 지성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잇다는 것을, 게다가 말을 너무 무겁거나 거창하게 사용하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 133p.
먼 아침의 책들 / 스가 아쓰코 / 송태욱 / 한뼘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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