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막이 내릴 때 ] 모든 대답은 그 연극 속에 있습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추리소설에서 유명한 탐정(경찰)을 탄생시켰다. 바로 가가 교이치로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시간상 [붉은 손가락]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 접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사건에는 가가의 어머니가 연결고리가 된다.
3년 전( [붉은 손가락] ), 가가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그때 사촌 동생과 담당 간호사는 가가에게 아버지의 곁을 지키라고 부탁하지만 가가는 병원 밖에서 병실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 작품에서 그 이유가 알려진다. 당시의 간호사와 사촌이 여기에도 등장한다. 이전 9편의 시리즈에서 부분적으로 나왔던 가가의 집안 내력과 가가의 신상이 이 작품에서 종합적으로 합쳐지는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보다는 ‘형사 가가 교이치로’의 삶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가가의 일대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가의 어머니가 쓸쓸히 죽고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중년의 여인이 목을 졸려 죽은 변사채로 발견된다. 비슷한 시기에 아파트 근처 하천 둔치의 노숙자 오두막에서 불에 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두 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처리하려 하지만 가가는 미심쩍은 부분이 남는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도쿄의 한 연극배우이자 연출가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리고 가가의 수사로 두 사건이 연결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그 증거는 가가의 어머니 유품에서 나온 것이다.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어?"
"굉장히 당당하던데요. 표정에도 여유가 있고, 질문하는 말투도 담담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뭐야?"
"배우잖습니까." - 317p.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상처가 살인을 불러왔다. 용의자의 과거에서 가가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사건을 풀어나간다. 수사에는 냉철하지만 범죄자에 대해서는 인간미를 잃지 않는 형사다. 전혀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전혀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작은 흔적이지만, 가가는 작은 단서 하나로 두 사건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마음에 깊은 어둠을 품은 여자일 거야. 그 어둠을 만들어 낸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 아닐까? 그래서 그 상처를 건드리려는 자가 나타나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말인가요, 어쩌면 살인까지도?” - 116p.
히가시노 게이고는 [천공의 벌]에서 ‘원자력 발전의 불평등’에 관해서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도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원전노동자로 설정하여 원전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다. 또한 [잠자는 숲]에서는 발레무용수와 발레단에 얽힌 사건을 수사하면서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을 쌓고 경지에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경외심을 보였다. 이 작품에서도 연극배우와 연출가의 모습에서 그러한 부분을 표현한다. 그것은 경찰인 가가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 수련으로 검도의 실력자가 된 가가, 발로 뛰며 단서를 모으고 수사하는 형사 가가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알람이라니요?”
“오늘은 방사선을 더 쐬면 안 된다, 하고 기계가 알려 주는 거야. 하지만 거기에 맞추다 보면 일을 할 수 없거든. 그래서 다들 이런저런 술수를 썼지.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은 짓을 했더군. 원전은 연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네. 그 녀석은 우라늄과 인간을 먹고 움직여. 인신 공양이 필요하지. 한마디로 우리 작업원들의 목숨을 쥐어짜야 움직인다 이 말이야. 내 몸만 봐도 알 수 있어. 이게 바로 목숨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일세.”
노자와가 양팔을 벌렸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갈비뼈가 앙상한 가슴이 드러났다. - 364p.
이 사건의 결말은 용의자 연출가의 연극 [이설(異說) 소네자키 동반 자살]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서 나온다. 가가는 “모든 대답은 그 연극 속에 있습니다(443p).”로 마무리 짓는다.
앞장서서 말없이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히로미는 몸이 떨렸다. 아버지 마음속에서는 자살이나 동반 자살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굳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없는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 396p.
이 소설을 읽기 전에 9편의 시리즈를 먼저 읽으면 좋겠다. 다른 작품에서 한 줄로 언급되었던 부분이 여기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나온다. 가가와 아버지의 사이, 가가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가가의 학창시절과 교사 생활, 그리고 경찰이 된 배경 등등. 다른 작품에서 나왔던 일화가 잠깐씩 등장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특이하게 읽힌 작품이다. ‘가가 교이치로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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