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쓸모 - 나만의 자목련 ]
나만의 자목련
친구와 여행지에서 수다를 떨던 밤, 느닷없이 대학 시절 추억이 소환되었다. 친구는 국문과여서 ‘현대시론’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시험을 잘 보고 싶어서 책을 달달 외웠다고 했다. 그러나 시험 당일, 시의 역사와 이론을 촘촘히 공부한 친구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왔다.
”캠퍼스에서 자목련이 가장 일찍 핀 곳이 어디인지 쓰고, 자목련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시오.“
당황한 친구는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 심지어 친구는 학교에 자목련이 핀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후 현대시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흐드러지게 핀 하얀 목련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자목련 하나 볼 줄 모르는 자가 무슨 시를 배우겠느냐.“
친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순간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작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세상을 대하는 첫 번째 자세임을 그때 배웠다고 했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일상에서 한발 비켜나 평소에는 잊기 쉬운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기보다는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려보는 기회랄까. 이번 여행에서는 친구의 자목련 이야기가 그랬다. 내가 보지 못했던, 나를 스쳐 간 자목련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살아가는 동안 ‘자목련’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지 않을지 몰라도, 그 여정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 ‘여행의 이유’ 중
기록의 쓸모 / 이승희 / 북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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