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문 1 - 모래알끼리는 서로 챙겨줄 수 있겠지.] 2019. 03. 29.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야반도주한 경험이 있거든. 빚쟁이에게서 달아나려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난 아직 어렸잖아. 불안하고 억울하고, 매일 비참하고 부끄러워서 죽고 싶을 정도였어. 친척이며 지인들에게 신세 지면서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원래 생활을 되찾기까지 이년 가까이 걸렸지.
집에서 전기와 가스와 수도를 마음껏 쓰고, 삼시 세끼를 챙겨먹고, 어른은 일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는 생활. 그런 건 생각보다 박살나기 쉬워. 약간의 그릇된 판단에 불운이 겹치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지. 그래서 지금도 다리 아래나 공원 구석에서 종이 상자나 방수포로 지은 집을 보면 왠지 여기가 욱신거려.
사람 하나하나는 모래알처럼 작아. 이 사회는 무수히 많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사막이야. 사막은 모래 한 알 한 알을 일일이 배려해주지 않고, 애당초 배려를 요구할 수도 없어. 그렇지만 같은 모래알끼리는 서로 챙겨줄 수 있겠지. 난 그러고 싶어. 사라진 사람들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 -177p.
비탄의 문 1 / 미야베 미유키 / 김은모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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