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의 문학과 소설가로서의 삶. 2016.11.1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 현대문학]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올해도 후보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열혈 독자들은 하루키에게 노벨문학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루키는 그 자체로 이미 노벨상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하루키’그 자체인 것이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모아 읽다보면 그 작가의 철학(인생관, 역사관, 글쓰기)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초기 작품부터 현재의 작품까지 읽게 되면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후, 여러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 그리고 많은 에세이는 초보 작가 하루키가 대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하루키가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지만, 하루키의 삶도 보여준다. 하루키가 야구경기를 보다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미화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 아닌가.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오후에 나는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 1회 말, 다카하지가 제 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 45p.
소설가란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자꾸자꾸 만들어가는 사람(228p)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세계는 올바른 세계여야 하고, 풍부한 세계여야 한다. 확고하고 올바른 자신의 인생관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역사관도 그래야 한다. 그런 점에 대해서 하루키는 일본의 교육시스템을 비판한다. 지금의 일본 교육은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도, 정의로움을 추구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교육 시스템의 모순은 그대로 사회 시스템의 모순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 219p.
만일 인간을 ‘개적인 인격’과 ‘고양이적인 인격’으로 분류한다면 나는 거의 완벽하게 고양이적인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향우’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좌향좌’를 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비뚤어진 짓을 하면서 이따금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좋든 나쁘든 그것이 나의 타고난 천성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보기에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개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어 단체로 졸졸 목적지까지 끌려가는 ‘양(羊)적인 인격’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 215p.
하루키는 이 책에서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받을 만한 작품 몇 개를 쓸 수는 있지만, 작가는 계속 나아가는 직업이기 때문에 꾸준한 작업이 요구된다. 그래서 하루키는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이 작품을 쓰다가 대작도 나오는 것이고 명작도 나오는 것이다. 한때 글 썼던 사람은 아무 의미 없다. 작가란 지금 글 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중요하다. 외국의 작가들과 교류할 일도 있지만 국제적인 문학상 수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루키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였다. 지금의 하루키는 번역의 힘인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 작가 한강의 작품이 큰 상을 수상한 것도 번역의 힘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번역과 번역자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최근 우리 문학계도 번역에 힘쓰고 있지만 더 노력해야 할 일이다.
외국에 진출하려는 작가에게 번역자는 누구보다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특히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번역자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번역자라도 텍스트나 작가 본인과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혹은 색깔이 어울리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스트레스가 쌓일 뿐이지요. - 310p.
소설가로서 어느 경지에 오르면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재미난 일도 경험하게 된다.
등장인물을 만든 것은 물론 작자지만, 참된 의미에서 살아 있는 등장인물은 어느 시점부터 작자의 손을 떠나 자립적으로 움직입니다. ~ 소설이 제대로 궤도에 오르면 등장인물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스토리가 제 마음대로 흘러가고, 그 결과 소설가는 단지 눈앞에서 진행되는 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지극히 행복한 상황이 출현합니다. -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 249p.
흔히 하루키를 천재성을 지닌 작가라고 말하지만 하루키는 천재성보다는 꾸준히 글을 써왔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소설이란 약간의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 한 권쯤은 비교적 술술 써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22p) 꾸준히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꾸준함이 성공을 불러온다. 하루키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과 생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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