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4분의 1 ] 네 가지 사랑 이야기. 잘 숙성된 품격있는 소설
[9월의 4분의 1 / 오사키 요시오, Yoshio Osaki / 황매]
일찍 데뷔한, 인기있는 작가들의 글쓰기를 보면, 처음엔 참신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신성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소재와 내용도 비슷비슷해진다. 심하게 말해서 작품들이 거기서 거기 같을 때가 있다. 금방 진을 빼버려서 그런가... 금방 바닥을 들어내보이는 것 같아서 급부상하는 젊은 신예작가들을 보면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그에 비해서 늦게 데뷔를 하는 작가는 젊은 작가와 비교해서 소재의 깊이도 있고, 적절한 느림의 맛, 차분하고 잘 숙성된 맛이 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데뷔한 작가 오오사키 요시오의 작품은 알맞은 속도로 진행이 되는 참 편안한 소설이다. 평범할 만한 이야기를 마음 속에 오래 묵혀두었다가 조심조심 꺼내어 놓은 듯하다. 잘 숙성된 이야기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감동시킨다.
모처럼 격조있는 고품격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9월의 4분의 1]은 오오사키 요시오의 첫 소설집이다.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9월의 4분의 1]은 그 중 한 작품이다. 네 편의 작품 속에서 말하는 이(주인공)은 모두 마흔을 넘긴 중년의 남성들이다. 주인공의 모습(성격, 취향, 직업, 지역 등등)은 네 편에 걸쳐 모두 일정한 범위의 공통분모(일관성)를 지니고 있는데 작가의 실제 모습이 많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의 성격도 있고, 작가의 수필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슬퍼서 날개도 없어서
9월 4분의 1
각각의 단편은 중년의 주인공이 청춘의 시절에 만났던 여인을 추억하는 이야기다. 지나가버린 젊은 날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여인과의 추억, 한번쯤 돌아가고 싶지만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애잔함과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이 이렇게 품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반 통속소설의 가벼움과 문학소설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큼 아름답고 격조가 있다. 잘 짜여진 구성도 한몫을 한다. 특히 열차의 스위치백, 동물원의 기린 이야기, 9월의 4분의 1이 뜻하는 것 등은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부분이다.
사랑에 대해서 여전히 설레고 풋풋함을 담고 있으며, 애잔하고 안타까움에 가슴 먹먹함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으면 [9월의 4분의 1]이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아는 순간, 읽는 독자는 또 한번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낄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는 것으로도 옛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아있다.
200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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