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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그리고 능소화 [아주 오래된 농담, 그리고 능소화] 2019. 10. 21 영빈은 현금의 집을 알고 있었다. 이층집이었다. 여름이면 2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의 꽃으로 뒤덮었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처음 느껴본 어렴풋한 허무의 예감이었다. 이층집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현란한 능소화 때문에 그 집이 그 동네서 특별나 보인 것이지, 그 안에 누가 사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그 이층집은 확실하게 현금의 집이 되었다. -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중 16p.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의 처음 부분에 '능소화'가 등장한다. 골목길.. 2019. 10. 22.
빨강 머리 앤 - 무한 긍정 소녀,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 머리 앤 [빨강 머리 앤 - 무한 긍정 소녀,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 머리 앤 ]    매슈가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여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햇볕에 그을린 야윈 한 손으로 다 해진 구식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을 매슈에게 내밀며 말했다. 유난히 또랑또랑하고 싹싹한 목소리였다. "초록 지붕 집의 매슈 커스버트 아저씨 맞으시죠?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뻐요. 절 데리러 오시지 않을까봐 막 걱정이 되려고 해서, 아저씨가 못 오시는 온갖 이유를 상상하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오늘밤까지 절 데리러 오시지 않으면 커다란 벚나무가 있는 모퉁이까지 기찻길을 따라 내려갈 생각이었어요. 그 나무에 올라가서 밤을 보내려고 마음먹었거든요. 전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하얀 벚꽃이 활.. 2019. 10. 15.
[장수 고양이의 비밀 ] 생활인 하루키의 모습 [장수 고양이의 비밀 ] 생활인 하루키의 모습 [장수 고양이의 비밀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하루키의 소설은 소설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독자에게 만족을 준다. 이 책은 1995년에서 1996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글 60여 편을 모은 것이다. 25여 년 전의 글인데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촌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당시 일본의 모습, 일본 출판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소확행’의 원조인 저자답게,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다. 편안히 읽을 수 있다. 글을 쓸 당시는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의 성공 이후로,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선 시기다. 출판사의 글 섭외도 많고,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던 시기다. 인기 작가로서의 일.. 2019. 10. 11.
혁명을 꿈꾼다면 주식을 하라 - 자본시장의 불공정성을 없애자. [혁명을 꿈꾼다면 주식을 하라 - 자본시장의 불공정성을 없애자. ] 개미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첫째, 출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밖에서 출세하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둘째, 주식시장에서도 루저 쪽에 서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수도사를 쫓아다녀서는 돈을 벌 수 없다. 적어도 노동을 하는 사람만큼의 정성과 성실함을 쏟으면 이익을 얼마나 보느냐는 둘째 치고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를 위해서는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 기간에는 큰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셋째, 완전경쟁 시장의 폭력성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완전경쟁 시장에 가깝다는 주장은 이미 허구로 밝혀졌다.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완전경쟁은 사실은 승자를 위한 게임.. 2019. 10. 6.
[쩜오라이프 ] 1.5평 고시원에서 희망 키우기. [쩜오라이프 ] 1.5평 고시원에서 희망 키우기. [쩜오라이프 / 재주 / 들녘] OCN의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의 공간 배경은 고시원이다. 고시원의 이미지는 어둡고 부정적이다. 예전에는 순수하게 고시 공부하는 곳이었지만, 요즘엔 거주의 용도가 더 크다. 그것도 거주 취약계층의 마지막 주거환경이라고 보면 되겠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도 많다. 고시원의 낭만은 너무 먼 얘기다. 그럼에도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 청춘들은 그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작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고시원에 들어가 생활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림 그리는 일로 먹고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월급이 들어오던 때와 달리 늘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 2019. 9. 29.
[공연 ‘Everybody wants him dead’ ] 강자와 약자, 선인과 악인. 기준은 무엇이고,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공연 ‘Everybody wants him dead’ ] 강자와 약자, 선인과 악인. 기준은 무엇이고,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공연 ‘ Everybody wants him dead ’ ] 공연 : Everybody wants him dead 관람 일시 : 2019년 9월 21일 오늘의 배우 : 장지후(프로듀서), 백형훈(싱페이), 조원석(검사), 조찬희(교도소장)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몰입도 최고인 연극이다. 표면적인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가 잘 균형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무대 장치도 신선하다. 무대의 장면이 라이브로 무대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재생된다. 영상이 연극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은 몇 번 봤지만, 라이브 영상이 연극의 핵심 소재가 된 것을, 나는 처음 접해본다. 무대 세.. 2019. 9. 22.
[여자들의 등산일기 (山女日記) ] 등산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등산예찬. [여자들의 등산일기 (山女日記) ] 등산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등산예찬. [여자들의 등산일기 (山女日記) / 미나토 가나에 / 심정명 / 비채] 이 책 처음 읽을 때 작가의 등산 에세이인 줄 알았다. 책 뒤표지에는 ‘NHK 전격 드라마화’라고 되어 있어서 등산 에세이를 드라마로 만들면 무슨 극적인 재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다 읽고 보니, 에세이가 아닌 소설, 그리고 이야기의 큰 줄기가 보였다. 산을 좋아하는 여성, 통칭 ‘마운틴 걸’이 모이는 ‘여자들의 등산 일기’라는 사이트가 있다. (사이트는 몇 번 언급만 된다) 등산을 좋아하는 여성, 등산에 입문하려는 여성, 기타 등산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도 이 사이트에서 등산 정보를 얻는다. 일본의 100대 명산을.. 2019. 9. 10.
[숙명] 시대적 광기가 낳은 숙명 .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건 아닐까? [숙명] 시대적 광기가 낳은 숙명 .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건 아닐까?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구혜영 / 창해 ]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종종 읽는데, [숙명]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대표작 또는 인기작의 목록에서 보지 못했다. [숙명]은 작가가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하고 5년 후(1990년)의 작품이니, 작가의 초기작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초기작품이 미스터리에 집중했다면, 이후 사건의 원인, 인물관계, 범행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작풍이 시작된다. 추리에서 이야기로 비중이 높아진다. [숙명]은 단순 미스터리를 넘어 다채로운 사건과 작풍으로 확장되는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학창시절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형사와 살인사건 관련자라는 .. 2019. 8. 29.
숙명 -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숙명 -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 널 만나기 훨씬 전부터 걔랑 기이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거든. 말은 이렇게 해도 나에게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말하자면 숙적... 이라고나 할까?  중학교에서도 나는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었어. 2등은 할 수 있지만 도저히 1등은 될 수 없었지. 모든 분야에서 그랬어. 전부 그 녀석 때문이었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감탄했지만 한 번도 나 자신한테 만족한 적이 없었어. 전학을 가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 고등학교 시험도 아키히코가 들어간 곳으로 쳤어.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어.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았고 굴욕감만 쌓여갔지. 그 녀석한테..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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