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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 동창회 자리에서는 흘러간 세월만큼 나이를 먹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시야 한구석으로 사야카의 모습을 찾았다. 기대했던 대로 사야카도 있었다. 사귀던 시절에는 너무 말랐다 싶던 몸매도, 여성스러운 곡선이 돋보이게 변해 있었다. 화장 기술도 늘었는지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보이는, 앳된 소녀 같은 위태로운 분위기는 예전 사귀던 시절 그대로였다. 그 사실을 확인하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것이야말로 사야카의 본질이었고, 그 위태로움을 잃은 그녀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야카는 늘 무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리고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 2020. 2. 26.
스무 살, 도쿄 - 그건 엄마가 넣은 용돈이야 [스무 살, 도쿄 - 그건 엄마가 넣은 용돈이야 ] 2020. 02. 23. "지난번에 나가노의 어머니 집에 갔었는데 말이지. 어머니한테 돈을 쥐어줬지. 백만 엔쯤. 사실은 좀 더 주고 싶었는데, 노인네를 놀라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우리 어머니, 검소하게 사는 게 몸에 박힌 사람이라 큰돈이라면 무조건 무서워해. 그래서 아직도 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재봉틀을 밟는데 말이지, 벌써 환갑도 지났고 이제 슬슬 놀면서 사시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이러는 거야, 어머니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괜찮대." 여기서 코를 한차례 훌쩍 들이켰다. "내가 물어봤지. 근데 어머니, 재봉틀 밟아서 하루 얼마나 벌어? 이봐, 얼마일 거 같아? 이봐, 다무라 짱~." 목소리가 슬며시 떨리고 있었다. 글쎄요, 라고 대답하면서 고다를 .. 2020. 2. 23.
[쇠나우 마을 발전소 ] 쇠나우 마을의 탈핵 운동. 탈핵은 에너지 절약부터. [쇠나우 마을 발전소 ] 쇠나우 마을의 탈핵 운동. 탈핵은 에너지 절약부터. [쇠나우 마을 발전소 / 다구치 리호 / 김송이 / 상추쌈]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진해일 피해를 영상으로 지켜보면서 많은 걱정을 했는데, 더 큰 문제는 원자력 발전소였다. 1986년, 러시아의 체르노빌 사고도 엄청 큰 사고였지만, 먼 곳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지식 부족으로, 또 심각한 상황이라고 인식하지 못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서울과 후쿠시마의 거리는 1200 km 밖에 안된다. 이 책은 독일 쇠나우 지역민들의 탈핵(탈원전) 운동과 그 성과를 보여주는 책이다. 탈핵 운동의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 남독일의 프라이부.. 2020. 2. 20.
먼 아침의 책들 -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 [먼 아침의 책들 -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 ] 2020. 02. 16. 1955년에 출판된 [바다의 선물]은 저자가 여름을 보낸 해변에서 마주한 열 가지 조개껍데기를 주제로 7개의 장으로 구성한 책이다. 인생, 특히 여자에게 인생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적은 것으로, 앤의 빈틈없으며 깊이 있는 사색이 각장에 가득한 작지만 아름다운 책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부분을 읽으면 아주 옛날 어렸을 때 나를 감동시킨 그 글의 무게가 다시 한 번 묵직하게 마음을 울린다. (이하 ‘바다의 선물’ 인용 부분) 오늘날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나라에 있는 사람보다 더 간소한 생활과 복잡한 생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치가 허락되어 있다는 것을 얼마간 얄궂은 기분으로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중.. 2020. 2. 16.
졸업 -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사토코는 조금 전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방금 도도가 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살일 경우 자신들 중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미카는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미카가 자살 같은 것을 할 친구인가. 그 점에 대해서라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타살일 리도 없고, 나미카가 자살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런 패러독스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었다. - 223p.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 2020. 2. 13.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모든 대답은 그 연극 속에 있습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모든 대답은 그 연극 속에 있습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추리소설에서 유명한 탐정(경찰)을 탄생시켰다. 바로 가가 교이치로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시간상 [붉은 손가락]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 접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사건에는 가가의 어머니가 연결고리가 된다. 3년 전( [붉은 손가락] ), 가가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그때 사촌 동생과 담당 간호사는 가가에게 아버지의 곁을 지키라고 부탁하지만 가가는 병원 밖에서 병실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 작품에서 그 이유가 알려진다. 당시의 간.. 2020. 2. 8.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원전은 연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네.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원전은 연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네. ] “알람이라니요?” “오늘은 방사선을 더 쐬면 안 된다, 하고 기계가 알려 주는 거야. 하지만 거기에 맞추다 보면 일을 할 수 없거든. 그래서 다들 이런저런 술수를 썼지.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은 짓을 했더군. 원전은 연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네. 그 녀석은 우라늄과 인간을 먹고 움직여. 인신 공양이 필요하지. 한마디로 우리 작업원들의 목숨을 쥐어짜야 움직인다 이 말이야. 내 몸만 봐도 알 수 있어. 이게 바로 목숨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일세.” 노자와가 양팔을 벌렸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갈비뼈가 앙상한 가슴이 드러났다. - 364p.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재인 [기도의 막이 내릴 .. 2020. 2. 6.
먼 아침의 책들 - 그 아버지에 그 딸 (‘그 아버지에 그 딸’ 중) [먼 아침의 책들 - 그 아버지에 그 딸 (‘그 아버지에 그 딸’ 중) ] 2020. 2. 1.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책을 사주면 그것을 읽었고, 성장하고 나서는 아버지가 읽은 책을 차례로 읽으라고 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읽는 법을 배웠다. 최근 들어 내가 번역이나 글을 발표하게 되자, 아버지를 알았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은 제대로 써야 하는 것이라 그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는 큰딸을 자신의 생각대로 키우려고 한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나름의 길을 개척하고 싶었던 나, 어느 쪽도.. 2020. 2. 1.
먼 아침의 책들 - 인생은 예삿일이 아니야(‘시게짱의 승천’ 중) [먼 아침의 책들 - 인생은 예삿일이 아니야(‘시게짱의 승천’ 중) ] 2020. 1. 21. 시게짱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51년 내가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35년이나 지나서였다. 조후에 있는 카르멜회 수도원의 면회실에서다. 수녀들과 손님을 가로막은 널찍한 격자창 너머에 있는, 하얀 천으로 빈틈없이 감싸인 그녀의 볼은 열 탓인지 눈이 부실 만큼 복숭아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코다테의 수도원에 있던 그녀가 몇 년 전부터 아교질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오랫동안 살던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에서의 생활을 재정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내게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홋카이도까지 병문안을 갈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시게짱이 도쿄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 .. 202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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